배수지진(背水之陳)
물을 등지고 친 진지(陳地)라는 뜻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력을 다해 성패를 다투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하여 한나라의 고조가 되기 2년 전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격파한 다음 조(趙)나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한신이 공격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나라의 헐왕은, 성안군과 함께 20만의 대군을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경현의 좁은 길목에 집결시킨 다음, 한나라 군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광무군 이좌거가 '한나라의 군사들이 좁은 길목을 지나갈 때 자신이 후방에 있는 군량미 수송대를 끊겠으니, 앞에서는 진영을 굳게 지켜 한나라의 군대가 나아가 싸울수도 없고 후퇴할 수도 없게 하면 쉽게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 이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성안군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신은 이좌거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첩자를 통해 알고는 매우 기뻐하며 그 좁은 골목을 단숨에 통과했다. 그리고 조나라 군대가 집결되어 있는 어귀로부터 10리쯤 떨어진 곳에서 기병 2천 명을 선발해 각자 붉은 깃발 한 개씩을 지나도록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조나라의 진지 가까운 산기슭으로 가서 잘 숨어 있어야 한다. 내일 전투에서 아군은 거짓으로 패한 척척하며 달아날 것이다. 그러면 적군은 신이 나서 모조리 아군을 추격할 것이다. 그때 성 안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니, 조나라 성 안으로 들어가 적군의 깃발을 뽑아 버리고 우리 깃발을 올려라."
또한 한신은 1만여 명의 군사를 정경현의 길목 밖으로부터 전진케하여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날이 밝자 조나라 군대는 한나라 군대가 위험하게 물을 등지고 진을 친 모습을 보고는 크게 비웃었다. 이윽고 한신은 대장기를 선두에 앞세우고 주력 부대를 ㅜ히몰아 북소리도 요란하게 두들기며 공격해 나왔다. 조나라 군사도 성문을 열고 응전에 나섰다 여러 차례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들은 계획한 대로 퇴각하여 강가의 진지로 달아나는 척 했다.
기세가 오른 조나라 군사들은 모두 성에서 나와 한나라 군대를 추격했다. 그 틈에 한신의 기병부대들은 성을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꽂았다.
한편,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들은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으므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한나라 깃발이 이미 꽂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 순간 한신의 군사가 앞뒤로 밀어닥쳐 순식간에 승부는 결정났다.
싸움이 끝나고 축하연이 벌어졌을 때, 부장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등 뒤에 높고 물을 앞에다 두고 싸우라고 햇는데, 이번 전투에서는 반대로 물을 업고 싸웠는데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신은 말했다.
"등 뒤에 물을 두고 싸우는 것도 훌륭한 병법이오. 어느 병서를 보면 '나를 사지에 밀어 놓고 비로소 살 길을 얻는 수가 있느니라'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응용한 것이 이번의 배수진(배수진)이오. 사실 우리 군사는 원정에 원정을 거듭하는 동안 대부분이 보충병으로 구성된 부대라 막상 유사시에는 우왕좌왕할 요소가 많았소. 그래서 상식적인 생지(生地)에다가 놓고 싸우느니보다 거꾸로 사지(死地)에 떠밀어 놓고 살 길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전략을 꾸민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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